◆ 영상 자료원 선정'한국영화 100선'과 한국영화 역사.


영화 이야기 2011.06.14 10:35 Posted by mullu


 
영원히 보존될 가치를 지닌 한국영화 100선..

한국 영상 자료원에서 선정한 한국영화 100선..이 100 선에 선택됐다는 것은 디지털 복원과 더불어 전세계에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이정표가 됨과 동시에 현대 관객들에게는 옛날 영화들을 선택 관람하게 하는 기준점이 될수 있겟다. 

개인적으로 이 100 선의 선택에 있어 다소 의아한 작품도 있고 생각했던 작품이 빠진것도 있지만 개개인 취향이야 전부 다를것 이므로 최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객관적으로 선정한 영화들 이라 생각한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영화사적으로 가치있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 영화도 있을테고 알려지지 않은 내막들이 있을수 있으므로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는 한국 영화의 역사와 더불어 당시의 시대상황을 이해 하는것이 우선적으로 요구 된다고 하겠다..

현재 발굴돼 보존되는 영화중 가장 오래된 영화로는 '미몽(1936)' 으로 기록돼 있으며 2천년대 들어와 한국영화가 활성기를 맞아 많은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이번에 선정된 100 선에는 1990년대 나온 영화들 까지만을 커트라인으로 삼았다.2천년대 부터는 디지털로 전부 전환되면서 보존에 큰 노력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 이 페이지는 관련 영화 포스팅이 계속되면서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

1930년대

 

1. 미몽     1936 양주남
2. 어화 1939 안철영

30년대 작품은 영상이 남아 있다는 자체가 그 역사적 가치로 보아 무조건 선정된듯 하다.일제 시대였던 30년대의 한국영화를 볼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 스러운 작품이다..

1940년대

3. 집없는 천사 1941 최인규
4. 자유만세 1946 최인규
5. 검사와 여선생 1948 윤대룡
6. 마음의 고향 1949 윤용규


1950년대

청춘 쌍곡선(1956)

지옥화(1958)

7. 운명의 손 1954 한형모
8. 미망인 1955 박남옥
9. 피아골 1955 이강천
10. 양산도 1955 김기영
11. 청춘쌍곡선 1956 한형모
12. 자유부인 1956 한형모
13. 시집가는 날 1956 이병일
14. 1958 김소동
15. 지옥화 1958 신상옥
16. 종각 1958 양주남
17. 이름없는 별들 1959 김강윤

한국 최초의 코메디 뮤지컬이라고 하는 '청춘 쌍곡선', 느와르 장르를 연상케 하는 신상옥 감독의 '지옥화'등 한국 영화가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던 시기이다..특히나 전쟁직후 빨치산을 다룬 최초의 영화 '피아골'은 유신이후 빨치산을 괴물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 상영 금지영화 1호가 된 작품이다..지금은 복권돼어 100선에 당당히 끼어있다..

피아골 (1955), 반공법 위반 상영금지 되었던 걸작.,
자유부인 (1956), 바람난 부인 시리즈의 대모 원조


한국영화의 황금기 (Golden Age) 1960년대

18. 로멘스 빠빠 1960 신상옥
19. 박서방 1960 강대진
20. 하녀 1960 김기영
21. 성춘향 1961 신상옥
22. 마부 1961 강대진
23. 오발탄 1961 유현목
24. 삼등과장 1961 이봉래
25.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 신상옥
26. 현해탄은 알고 있다 1961 김기영
27. 서울의 지붕 밑 1961 이형표
28. 또순이 1963 박상호
29. 고려장 1963 김기영
30. 돌아오지 않는 해병 1963 이만희
31. 김약국의 딸들 1963 유현목
32. 혈맥 1963 김수용
33. 맨발의 청춘 1964 김기덕
34. 육체의 고백 1964 조긍하
35. 마의 계단 1964 이만희
36. 검은 머리 1964 이만희
37. 춘몽 1965 유현목
38. 갯마을 1965 김수용
39. 비무장지대 1965 박상호
40. 초우 1966 정진우
41. 물레방아 1966 이만희
42. 산불 1967 김수용
43. 귀로 1967 이만희
44. 안개 1967 김수용
45. 장군의 수염 1968 이성구
46. 휴일 1968 이만희
47. 미워도 다시한번 1968 정소영
48. 독짓는 늙은이 1969 최하원
49. 천년호 1969 신상옥

60년대는 2천년 이전의 한국 영화사의 가장 황금기 라고 할수 있겠다. 많은 대작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신필림이 홍콩의 쇼브라더스와 손잡고 만든 초대형 블록버스터 걸작들은 100선 에서 전부 빠져 있다.당시에는 홍콩 영화계가 한국영화계의 하부 조직처럼 인식돼 당연히 신필림 영화들은 한국영화로 취급해 대종상을 수상 하는등 한국영화로 봤지만 현재 중국 영화계가 더 커지는 바람에 인식이 역전돼어 제외 된듯 하다.(아니면 신필름이 사라지고 중국측이 중국말로 더빙한 판본을 먼저 복원해 한국영화 로서의 명분을 잃었을수도 있다..)


※ 달기와 대폭군의 경우 감독과 주연배우 전부 한국사람들로 한국과 홍콩 합작 영화 이지만 현재 중국말로 중국측에 의해 복원돼어 중국 영화로 아는분들이 대부분이다...그러나 달기에서 폭군을 연기한 한국배우 신영균은 이 영화로 그해 한국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대폭군의 경우는 홍보문구도 '한국영화 60년사의 거대한 꿈' 이다..당시만 해도 신필림이 제작해 내놓은 한국 영화였다는 증거이다.

한국영화 이긴 하지만 이미 중국측에 의해 디지털로 깔끔히 보존되고 있기에 궂이 보존 돼야할 영화 목록으로 필요치 않다고 판단되어 진다.(그러나 신필름이 없어지면서 중국영화 처럼 권리를 빼앗겨 버린것에 대해선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수 없겠다.)

아마 신필림의 역사극들이 순수 한국 영화 였다면 거의 60년대 작품은 신필림 영화들로 채워지지 않았을까 싶다.그만큼 신필림은 한국을 대표하는 거대한 영화사였고 많은 초대형 작들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정해진 편수를 선정 하려면 얼마나 선정에 머리 싸맸을까..싶을 정도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들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온 시기인데다 장르도 다양했으므로 시대적으로 어느정도 균형있는 분포도를 보이기 위해 한국영화의 황금기인 60년대 걸작들이 대거 빠질수 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100 선에 유일하게 60년대 에만  마의 계단(1964), 천년호(1969) 공포물이 두편 올라와 있는데 마의계단은 히치콕 스타일의 한국 최초의 미스테리 스릴러로서 그 의의를 찾을수 있으며 개인적으로 살인마(1965) 역시도 걸작이라고 생각 하지만 전반적으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밀려난듯 하다.'살인마'도 마의계단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흑백 영화이며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는 천년호가 대표격으로 선정 됐으므로 빠지게 된듯하다..리메이크 걸작 코메디인'맹진사댁 경사' 역시도 50 년대 최초의 작품 '시집가는날' 이 선정돼어 빠지게 된듯 하다..


이 당시에는 배우들도 개성을 중시하는 '성격배우'란 단어가 쓰였는데 여배우로서는 '마의 계단'에서 주연을 맡았던 '문정숙'이 성격배우로 각광 받았다.문정숙 이후로 여배우가 성격배우란 말을 듣는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60년대 한국 영화계가 얼마나 제약없이 다양한 장르를 시도를 했었는지를 알수있다..

고려장 (1963), 역사? 고려 암흑시대 충격 '지옥도' 판타지.
마의 계단 (1964),한국 영화 최초의 정통 미스테리 스릴러..
살인마 (1965), 시체를 먹여 키운 고양이 귀신의 복수.
천년호 (1969),유명한 천년 묶은 여우 귀신 오리지널..

한국 영화의 암흑기 70,80년대..


1970년대

70년대와 80년대는 검열등으로 인해 한국 영화계가 초토화 되는 시기로 대표격 초대형 영화사인 신필림이 개정된 영화법에 의해 무너지자 한국 영화는 기둥을 잃고 완벽하게 풍지박산 나게되는 암흑기 라고 할수 있다. 한국 영화가 60년대 에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닌 꺼꾸로 후퇴하는 수준을 작품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수 있다..

60년대 황금기를 주도했던 실력있는 많은 한국의 영화인들이 당시에는 한수 야래였던 홍콩으로 건너가 한국 영화가 아닌 홍콩 영화계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데 기여를 하게된다.홍콩 무협물을 세계시장에 최초 진입하게 만든것도 한국의 정창화 감독이다.정창화 감독의 '죽음의 다섯손가락'은 홍콩 무협물을 세계 시장에 알리는데 선봉 역활을 했으며 그 후광을 업고 이소룡이 홍콩 무협 영화를 다시한번 전세계에 알렸다.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타란티노가 킬빌에서 오먀쥬를 선보이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추천해 또 한번 유명세를 탔다..


 
그리고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1978년도 벌어지는데 바로 신필림을 이끌던 신상옥 감독과 한국을 대표했던 여배우 최은희의 납북 사건이다..그야말로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두 거물이 남한에서 개정된 영화법에 의해 몰락하자 북한에 둥지를 틀게된 사건이다.한해 150 여편을 제작하던 거대한 영화사인 신필림이 사라지게 되고 사람마저 납북 돼어 버렸으니 그야말로 한국 영화계로서는 기둥을 잃고 풍지박산 났다고 표현하는것이 딱 맞을듯 하다..(당시에는 납북이 아닌 자진 월북이라는 말도 돌았으나 1984년 4월 안기부가 '북한에 의한 강제 납북'으로 공식 발표하게 된다.) 게다가 신감독이 북한에서 영화를 만들게 되자 60년대 최은희가 출연했던 많은 걸작들과 신감독의 걸작들은 조국을 배반한 반역자의 작품이란 딱지가 붙어 버렸고 6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기는 그렇게 사라지게 된다..

신필름은 50년대에 이미 천평이 넘는 원효로 찰영소 안에 녹음실,편집실을 갖추고 있었고 정규직원 300명에 조감독만 30명을 고용하고 있었다..영화제작에 쓰이는 차량만 10여대가 넘었고 사원 출퇴근과 업무용 버스가 동대문에서 용산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 하였으며. 62년부터는 영화배우들을 양성하기 위해 ‘신필름 부설 연기실’을 운영  발성연습, 승마, 댄스 등을 교육했다.이 연기실의 인기도  대단해서 65년 4기 모집 때는 3,600여명이 몰려 ,들었다고 한다. 66년에 2만 5천평의 안양 영화 촬영소를 인수하고 이 안양촬영소 내에 ‘신필름 영화 예술학교’를 설립 하기도 했다..거대해져 가는 몸집에 걸맞게 60년대 중반에는 하도급 회사들 까지 동원해 한해 제작하는 영화가 150 편을 넘어서게 됐다고 한다..(자료 출처 영상자료원)

70년대 신필림이 무너지고 난후 관리하는 사람없이 방치된 그 많은 작품들이 대부분 유실됐음을 알수있다.신필림이 무너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개정된 영화법 쿼터제 때문인데 쉽게말해 영화사마다 국가에서 할당해주는 편수만 제작하게 하는 법이다.독식하지 말고 골고루 나눠서 제작 하라는 뜻인데..최소 일년에 40편 이상을 제작해야 유지가 되는 거대한 공룡 신필림은 직격탄을 맞고 분해될수 밖에 없었다..

영화 제작에 관한 법을 바꿈과 동시에 모든 창작에 대한 당국의 검열이 시작되면서 예술인들은 창작 의욕을 접거나 정권입맛에 맞는 작품만을 만들수 밖에 없었다.그런 와중에 작가적 고뇌가 필요없는 카피가 득세하기 시작했다.이때부터 한국영화와 모든 산업 분야는 무조건 일본것 같다 베끼기가 일상화 되는데 창작의 자유가 구속받던 시절 이므로 당연히 창작 열기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할수 있겠다..

특히나 애니메이션 분야에 있어서도 디즈니에 버금가는 수준의 60년대 애니메이션 '호피와 차돌바위(1967)' 같은 만화가 제작된후 발전하는 것이 아닌 반대로 국적불명, 조잡한 그림체의 싸구려 미국,일본 애니의 복제판이 대세를 장악하게 된다.

배트맨을 표절한 검은별과 황금박쥐(1979)

호피와 차돌파위(1967) 

원더우먼을 표절한 날아라 원더공주 (1978)

70년대 한국 만화를 보면서 일본이나 미국 디즈니와의 수준차를 절감했던 한국인들 이라면 60년대 나온 애니메이션 호피와 차돌바위(1967) 수준을 확인해 보기 바란다..(비록, 구하기는 쉽지 않으나..)프레임을 넉넉히 부여해 부드러운 모션과 더불어 원근법등 실제 전문 화백의 예술적인 그림체로 한국의 독창적 멋을 풍기고 있으며 효과음악 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 못지않은 고품격 수준을 보이고 있다..예술성으로 따지자면 로보트 태권브이가 아닌 이 애니메이션이 디지털 복원됐어야 마땅하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기술들은 발전 이어지지 못했고 한국 애니메이션 기술은 산업화란 구호아래 예술이고 뭐고 무조건 카피하고 싸고 빠르게 제작해 돈만벌면 된다는 식으로 수십년의 '퇴보현상' 을 보이게 된다..(사실 아직까지 한국적 캐릭터를 호피와 차돌바위 만큼 수준있게 구현해 내는 한국 애니메이션은 없다..)

50. 화녀 1971 김기영
51. 화분 1972 하길종
52. 별들의 고향 1974 이장호
53. 영자의 전성시대 1975 김호선
54. 삼포가는 길 1975 이만희
55. 바보들의 행진 1975 하길종
56. 고교얄개 1976 석래명
57. 겨울여자 1977 김호선
58. 이어도 1977 김기영
59. 소나기 1978 고영남
60. 장마 1979 유현목

아마 60년대 영화들 중에서는 경쟁작이 너무 많아 걸러내느라 고심 했다면 70 년대 작품은 구색을 위해 눈에띠는 작품들은 별다른 경쟁없이 선정됐을 가능성이 높다. 블록버스터 물들을 만들던 신필름이 사라진 70년대 한국영화의 대부분은 영세한 영화사들이 찍어대는 호스테스 물들이며 .특히나 신파 형식이 가장 활발했던 때가 60년대가 아닌 바로 70년대로 시대를 마구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고 보면 되겠다.하이틴 신파의 대표격인 문여송 감독의 '진짜진짜' 시리즈 등도 히트했지만 보존해야할 만한 가치는 당연히 없다...'고교얄개' 는 영화적 완성도와는 별개로 70년대를 대표하는 하이틴 얄개 신파물의 대표작으로 선정된듯 하다.소나기는 그야말로 70년대 가뭄에 등장한 소나기 같은 영화이다..경쟁 상대가 없으므로 그냥 뽑아야 맞겠다..

별들의 고향 (1974), 70년대 한국영화 키워드 '호스테스' 대표작
영자의 전성시대 (1975), 근대화에 가려진 소외된 그들의 이야기.
바보들의 행진 (1975), '병태와 영자' 시리즈의 탄생.
황순원 원작 '소나기(1978)' 아련한 슬픔과 그리움.


1980년대

61. 바람불어 좋은날 1980 이장호
62. 짝코 1980 임권택
63. 최후의 증인 1980 이두용
64. 피막 1980 이두용
65. 만다라 1981 임권택
66.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이원세
67. 꼬방동네 사람들 1982 배창호
68. 안개마을 1982 임권택
69. 바보선언 1983 이장호
70.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1983 이두용
71. 고래사냥 1984 배창호
72. 장남 1984 이두용
73. 땡볕 1984 하명중
74. 깊고 푸른 밤 1985 배창호
75. 길소뜸 1985 임권택
76. 티켓 1986 임권택
77. 씨받이 1986 임권택
78.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1987 이장호
79. 성공시대 1988 장선우
80. 칠수와 만수 1988 박광수
81. 개그맨 1988 이명세
82. 아제아제 바라아제 1989 임권택
83.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1989 배용균

80년대 역시도 5공의 3S (Sports,Screen,Sex) 정책 에 의해 한국 영화가 그리 볼만하지 않은 작품들(주로 에로물)이 쏟아져 나온 시기로 한국영화는 곧 에로영화로 통하던 시절이다..


사실 80년대 작품이 이렇게 많이 선정된것에 대해서는 관계자들이 공로를 인정받고 대접 받아야할 원로란 점도 관계 있다고 보여지며 개인적으로 그다지 공감되지 못하는 작품도 있다. 개인적 취향과 객관적 시각은 다를수 있으므로 공정성 부분은 뭐라 말할수 있는 부분은 아닌듯 하지만 80년대에도 할당된 선정 편수가 넉넉 하기에 걸작들은 별다른 경쟁없이 선정 됐을듯 하다.다른 경쟁작 대부분이 통속 에로물 들이니까..100선에 낄만큼 가치가 의문되는 작품이 가장 많이 포함되는 시기가 70, 80년대 인듯 하다.얼마나 빈곤 했는지를 알게 해준다고나 할까..이때는 여배우 벗기기에 모든 영화사가 열중할때 이며 안소영, 이보희등이 과감한 노출로 데뷔 스타로 떠올랐다..제목들도 '피조개 뭍에 오르다', '빨간앵두'등 선정적인 제목을 내세운 영화들이 줄을 이었다..,

토속적 색채로 예술로 위장한 강간, 에로물들이 많이 나왔던 시기이기도 하다..(80년대 영화에서 강간이 소재가 되지 않는 영화 찾기 힘들다...)에로가 아니란 것만으로도 80년대 영화는 걸작 취급 해도 된다..

80년대 한국 영화계의 가장 큰 수확이라면 기존의 통속적인 한국영화 스타일과는 완벽하게 차별화되는 최고의 감각을 지닌 배창호 감독의 출현 이라고 할수 있겠다.배창호 감독의 작품이 세편 선정 되었는데 자신의 밑에서 연출을 배우던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개그맨'에는 주연으로 까지 출연하면서 적극 지원 참여했으므로 네편 이라고 봐도 무방 하겠다.사실 수준으로만 서열을 정해 선정한다면 배창호 감독의 전 작품이 다 선정 돼어야 마땅하지만 적당히 조율 했다고 할수 있겠다.

80년대 말인 89년도 배용군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영화는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신선한 이정표를 제시한 작품이라고 하겠다.독립예술영화로 작가적 영화가 한국 영화에서도 나올수 있다는 가능성..물론 외국에서 상을 받고 인정받은 경우지만 그런 방식으로 나마 예술 독립영화가 살아날수 있게 만드는 길을 제시했다 하겠다..

재미있는 것은 1980년도 대종상 거의 전부문을 휩쓸며 당대 최고 걸작이라고 추켜 세웠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가 빠지고 그해 검열에 의해 1시간이 잘려 나가며 걸레처럼 망신창이가 돼 버려졌던 최고의 걸작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1980) 이 100선에 선정 됐다는 사실이다.역시 세월이 흐르면 진실은 드러나게 되는 법이라고 하겠다...

검열이 죽인 비운의 한국영화 걸작, 최후의 증인(1980),
안개마을(1982), 익명에 가려진 성적 도덕적 타락.
바보선언 (1983), 한국 컬트영화의 대표작으로 우뚝솟은 작품.
깊고 푸른밤 (1984), 80년대 최고의 화제를 모았던 명작..

1990년대

84. 우묵배미의 사랑 1990 장선우
85. 파업전야 1990 이은 외
86. 남부군 1990 정지영
87. 그들도 우리처럼 1990 박광수
88.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990 이명세
89. 경마장 가는 길 1991 장선우
90.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992 박종원
91. 하얀전쟁 1992 정지영
92. 결혼이야기 1992 김의석
93. 첫사랑 1993 이명세
94. 서편제 1993 임권택
95. 그 섬에 가고 싶다 1993 박광수
96. 개같은 날의 오후 1995 이민용
97.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 박광수
98. 꽃잎 1996 장선우
99.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996 홍상수
100. 축제 1996 임권택

90년대는 70,80년대 맥이 끊어지고 기형적으로 버텨오던 한국영화가 다시 조금씩 살아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시기이다.한국도 국제 저작권법을 따르기로 하면서 그간 무단으로 외국 음악을 영화에 OST 처럼 삽입하는 행위도 사라졌으며.'피아골' 이후 금기시 되었던 빨치산 이야기 '남부군'이 다시 등장했다. 오락영화들과 더불어 작가적 예술 영화들도 등장하게 된다..에로물을 벗어나 대부분 코믹 조폭 이야기가 한국영화의 가장 흥행 키워드였는데 100선은 화제와 흥행 위주 보다는 작품성 위주로 선정 되었다고 할수 있다.역시 독립영화로 외국에서 수상해 국내에 알려진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도 선정 돼었다..

개같은 날의 오후, 한국 코메디의 명작

전체적으로 봤을때 시대별로 적절하게 균형을 맞추려 고심한 리스트 인것 같다..영화적 완성도 만을 놓고 100등 까지 뽑으라면 60년대 작품들이 대부분을 차지해야  정상이지만 (특히나 홍콩 영화계를 압도했던 60년대의 신필림 작품들은 지금봐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각 시대별로 의미있는 작품들로 적정 배분을 해 선정한 리스트로 무작정 순위등을 매겨 100등 까지 선정한것은 아니란것을 알아야 겠다.그리고, 물론 유실된 많은 영화들은 선정될 기회조차 없었다는 것도...

비록, 리스트에는 빠졌지만 60년대 홍콩 쇼브라더스와 손잡고 만든 한국의 사극 블록버스터 물들은 자랑스러운 한국영화 라고 봐도 된다..다만, 합작의 경우 중국말과 한국말 버젼 두가지가 존재하게 되는데 한국어 버젼은 유실된것이 많고 중국말 버젼이 보존되는 경우가 많아 중국영화 처럼 남게된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국영화 데이터 베이스 작업이 시작된지 얼마 안된것으로 아는데 현재 많은 수의 과거 영상들이 유실되었으며 데이터 베이스 목록에도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영화들도 상당수 이다..그런점에서 이런 보존해야할 영화 선정등은 의미있는 일이 아닐수 없겠다..

왜 한국 영화들은 유실된 작품들이 많은가?

한국영화가 유실된 작품들이 많고 필림이 보관 안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해당 영화사의 몰락때문 이라고 딱 잘라 말할수 있다..무엇보다 70년대 신필림이라는 거대한 회사가 무너지면서 군소 영세 영화사들이 치고 빠지는 식으로 영화를 주로 만들어오면서 망하고 흥하고를 반복, 외국의 메이져 영화사처럼 자신들의 작품을 관리할 능력이 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영화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 이다..실예로 외국의 경우는 자사의 작품들을 영화사가 자체 복원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없어진 영화사가 대부분이라 국가 기관인 영상 위원회에서 필림을 발굴해 복원사업을 벌인다.

한국영화가 90년대 서부터 다시 활성화를 보이며 현재 많은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만약 2천년대 영화들까지 대상으로 100 을 뽑았다면 이중에서 탈락할 영화들이 대거 나올것이므로 이 100선은 그대로 유지하고 또 다시 2천년대 작품들은 따로 분리하는것이 맞을듯 하다..2천년대 이후 나온 영화들은 처음부터 디지털로 변환되고 있기에 보존에는 문제가 전혀 없을것이므로 아마 세월이 흘러도 유실되거나 하는 문제는 없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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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ttp://www.fritzdc.com/ BlogIcon 弯管机价格 2018.02.26 14: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마 ,几字钢设备,河南750楼承板机; ,全自动梯形瓦设备; 840 900高配双层压瓦机参数

    840 900压瓦机
    1. 整机外形:5600mm*1400mm*1400mm
    2. 导柱剪切头:压力大,卡槽机特点,噪音小,切板平整无毛刺
    3. 中板:U型16mm
    4. 机架:采用300H钢焊接
    5. 轴径:¢70mm
    6,几字钢设备. 链条双侧双挂1.2寸链条:常压0.6到0.8的板子没问题





    电话:0317-8226686 17717790720微信同步 网址: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