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린: 최후의 결전 (2011),전란속 소림사의 최후..


◆중국/홍콩/동양 2011.10.31 07:00 Posted by mullu



샤오린: 최후의 결전 (2011) 新少林寺 New Shaolin Temple

진목승
출연 성룡 (호우지에 역), 사정봉, 유덕화, 판빙빙, 오경 (징넹 역)

少林 을 샤오린 이라고 읽어야 하나..

이 영화의 오리지널 제목은 '신 소림사' 이다..샤오린은 소림사의 중국 원어 발음 내지는 영문 발음 이다..우리나라는 한문 그대로 익숙한 '소림사' 라고 읽으면 되는데 왜 샤오린 이라고 낮선 발음 제목을 붙였는지는..외국말 우대 풍토가 한문 발음인 소림사 까지 샤오린으로 발음해야 되는지..다소 의아한 네이밍 이긴 하다..

샤오린이 뭔가 다른 뜻이 있는줄 알고 봣는데 누구나 다 아는 소림사를 지칭하는 것을 알고는 바로 헉....少林 한문 발음을 소림이라고 하면 왠지 촌스럽고 '샤오린' 이라고 해야 괜찮아 보이는 시대인지도...어쟀든, 이 영화는 상당한 물량으로 화끈한 전쟁과 액션을 보여주는 역사속의 소림사 최후를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는 중국 당국이 홍콩 영화계를 접수한후 지속적으로 발전 시켜가는 무지막지한 물량공세의 애국심 고취용 영화라 볼수있다.중국 건국 초창기를 배경으로 화끈한 물량을 동원, 군대의 총에 맞서는 소림사의 전쟁을 담고있다.유덕화 주연에 중국 영화의 대부 성룡이 조연으로 출연하며 그 외에도 판빙빙, 사정봉등 일류급 배우들이 총 출연한다...


반란군들이 들끓던 중국 공화국 초기, 백전백승의 장군 호우지에(유덕화 분)는 소림사가 위치한 동봉성을 함락시키는데 성공한다.이 과정에서 적군을 살려주려는 소림사 중들을 마구 위협 하기도 한다..


판빙빙은 유덕화의 아내로 나오는데 승리에 도취된 채 의기양양하던 호우지에는 가장 믿던 의형제 카오만(사정봉 분)의 배신으로 딸을 잃고 사랑하는 아내(판빙빙)마저 행방불명 되게 된다. 그를 살려낸 것은 다름아닌 소림사의 중들..


자신의 권력 야욕에 의해 딸도 죽고 아내마저 행방 불명돼자 모든것을 체념한 유덕화는 불교에 귀의, 소림사에 입문하게 되면서 그저 얌전히 불도에 귀의하려 했지만..운명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간만에 보는 성룡식 코믹 액션..소림사 주방장..

성룡은 이 영화에서 조연이지만 소림사의 주방장으로 등장해 무술을 못한다고 엄살 부리면서도 주방에서 익힌 반죽 권법등을 통해 군인들을 휙휙 처리해 버린다...간만에 성룡 전성기 때의 척척 하는 마스게임 권법을 다시 볼수 있다..


완전히 나뿐놈의 극한을 보여주는 사정봉..배신해 모시던 유덕화의 가족을 몰락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대신 권력을 잡자 유덕화의 아내 판빙빙을 인질로 잡고 끝까지 나뿐짓의 극단을 달린다.외세와 손잡고 유물들을 팔아먹고 노동시킨 노동자들은 비밀을 우려해 모조리 죽여 버리는 .. 중들인 소림사가 도저히 묵과할 수준의 일들이 아닌 만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최후의 결전..총을 든 군대와 맞서는 소림사의 중들..어린 아이들 까지 튀쳐나와 군인들을 상대로 무술로 상대해 보려 하지만..대포로 절을 부수고 들어오는데야..결국 소림사는 아예 흔적도 없이 파괴되어 버리지만..소림사의 어린 중들은 성룡의 인도아래 소림사의 정신을 계승 지켜 나가겠다고 다짐하는 엔딩..

그러나, 이렇게 철저하게 몰락한 소림사가 지금은 이때와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더 큰 상업 집단이 되었으니..중국인들의 정신을 지켜나간 소림사의 역사물로 중국영화가 나아가는 방향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다 하겠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gamjuu.tistory.com BlogIcon 즈라더 2011.10.31 17: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샤오린은 영어제목이 아니라 소림의 중국 발음일 겁니다.
    솔직히 액션은 실망스러웠지만, 나름 괜찮은 영화였어요.

  2. Favicon of http://www.google.co.kr/ BlogIcon 오유보빨왕 2015.11.03 2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등학교 2학년때 타지역에서 전학 왔던 나에게 니가 건낸 첫마디는 "너 좀 놀줄아냐?"였다.
    그저 정말 play노는걸 좋아하는 나는 "응 나 노는거 되게 좋아하는데?"라고 답했고
    그때부터 내가 웃겨보였는지 전교생 100명도 안되는 곳에서 무려 3년동안이나 왕따를 시켰다.

    책머리말을 보고 외우지 않으면 맞는다, 밥 못먹을줄 알아라 등등 화장실에 끌려가서 구타당하는건 우스울정도였다.
    간혹 드라마에 나오는 괴롭힘을 나는 1999년에 맞이했었다. 매일같이.
    왕따를 당하는걸 안 우리 엄마아빠는 괴롭히지말라고, 잘지내달라고 직접 찹쌀도너츠도 만들어다주고
    꽃도 선물해주고 정말 헌신하면서 잘해주었다.

    하루는 내 생일이어서 좋아하는 친구들만 초대해서 생일파티를 했다.
    그 다음날엔 자기를 초대하지않았다고 또 화장실로 끌려갔고 내 생일파티에 왔던 친구들도 괴롭힘을 당했다.

    나아질 기미가 안보여서 나는 바로 옆동네 학교로 전학을 갔다. 살만했다.
    근데 그렇게 오래 왕따를 당했다보니 피해의식도 상당했고 그걸 견디려고 이겨내려고 노력한 시간이 자그마치 10년이 넘었다.

    옆동네 학교였지만 집은 그대로라서 니가 다니는 학교를 매일같이 지나다녀야했고 하루는 지나다니는 나를 데리고
    운동장으로 가더니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며 니 언니까지 동원해가면서 내 뺨을 때렸다.
    집에 도착해서 티 안내려고 방으로 바로 들어가려고했는데 부은 뺨을 보고 엄마가 다그쳤고 사실대로 말했다.
    넌 몰랐겠지? 입안이 터져서 피는 고사하고 이까지 나갔다는 사실을. 우리 부모님 노발대발해서 너희 부모님이 일하는
    사슴농장에 갔었다. 너네집 바로 옆이었지 가게가.
    너한테 사과받겠다고 너 내려보내라고 우리엄마아빠가 소리까지 질렀는데 너희 부모님도 무시하고 너도 안내려왔다.
    난 분명히 그때 널 봤는데 말이지. 그땐 내가 5학년이라 어떻게 해야할지도 몰랐고, 지금만 같았어도 그때처럼 넘어가진 않았을거다.

    그러고 15년동안 볼일 없었고 정확히 이틀전 우연히 서울방향 버스정류장에서 우리둘은 마주했고 눈도 마주쳤다.
    그 날 나는 나름 기념일이라 옷도 빼입고 화장도 예쁘게했었고 너는. 그냥 웃음이 났다.
    참 나쁜거 알고 겉모습으로 사람 판단하는거 아니란거 알고있지만 나에게 있어서 너는 그래도 된다. 그냥 그렇게 생각할거다.
    왜 하필 나랑 마주친 날에 그렇게 후질근한 차림으로 그렇게 살찐모습으로 그렇게 찌질하게 서있었는지. 고맙다. 그렇게 지내줘서.
    다시 마주쳤는데 너가 더 잘나보이면 내가 얼마나 비참하고 불쌍해지겠니.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잘사는 세상에 나는 참 좋은 결말을 맞이한것 같구나. 너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