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24블로그축제]성룡이 견인한 홍콩 영화의 역사


영화 이야기 2010.06.05 19:32 Posted by mullu



홍콩영화의 기둥을 세운 성룡

어릴때 보아왔던 남루한 중국,홍콩 영화와 지금의 전세계 영화시장에 큰 영역을 차지한 중국,홍콩 영화들을 보면서 얼마만큼 단기간에 홍콩 중국영화 시장이 급성장 했는가에 감탄을 금할수 없다. 이 홍콩에서 부터 시작된, 지금은 중국이 흡수해 버린 영화 역사의 줄기들을 따라가다보면 그것을 견인하는 한 인물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성룡 잭키찬 (Jackie Chan 1954 년생)이다.

성룡이 처음 데뷔할 시기는 한국의 영화는 홍콩 영화 시장과 제작환경이 서로 비슷하였고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무협물에 홍콩 배우들이 출연하는 합작 방식으로 제작이 많이 이루어 졌었다.성룡도 무명 이었을 당시 홍콩과 한국의 무협영화등에 악역 내지는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영화계에 입문 하였다.





이소룡의 빈자리를 꿰차다.


홍콩을 무협영화의 종주국으로 만든 한명의 영웅은 이소룡(Bruce Lee) 브루스 리 이다.당시는 이소룡이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홍콩영화 = 부르스 리 영화처럼 인식됐던 시기로 브루스 리를 흉내내는 짝퉁 무협물이 한국과 홍콩에 범람하던 시기이다.당시 어린아이들은 이소룡 흉내내며 놀기에 바빴다.

이소룡이 사망하고 나서도 한동안 홍콩 영화계는 이소룡의 후임자 찾기에만 몰두 하면서 이소룡 비슷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이소룡식 영화가 대세였고 이소룡의 사망과 함께 홍콩영화도 활로를 찾지 못한채 서서히 죽어 가는것으로만 느껴졌다.

그때, 혜성처럼 등장한것이 바로 성룡, 심각하게 인상짓는 이소룡과는 차별화되는 가벼운 무협에 코믹을 섞은 새로운 스타일로 이소룡이 사라진 홍콩영화계를 코믹 스타일 쿵후로 건져 올렸다.

사형도수로 시작, 후속작인 취권(1978) 은 한국 영화사상 최초의 백만 관객을 동원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대 기록을 남긴 작품이다.지금은 대한민국에서도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들이 나오는 시대이지만 당시 한국에서의 백만 관객은 영화인들에게는 넘을수 없는 꿈의 숫자였다..그야말로 구름같이 극장앞에 난장판을 벌이고 줄을 서거나 암표를 사야 관람이 가능했다. 취권의 열풍이 대한민국을 휘감았고 그 이후 소권괴초등..성룡의 영화는 나오는 즉시 매진,홍콩영화는 성룡을 중심으로 새판이 짜지기 시작한다.성룡이라는 이름은 흥행불패 카드가 되어갔다.


무명 시절의 성룡



성룡은 1954년 홍콩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태어났을 때, 그의 부모는 병원비 26달러가 없어 그를 의사에게 팔아 버리려고 했었다고 한다. 다행히 의사는 그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았고 호주의 미국 대사관에 일자리를 얻은 성룡의 부모는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주했다.열 살이 되던 해, 성룡은 홍콩으로 돌아와 10년 계약으로 의식주를 제공하는 곡예와 무술, 연기까지 가르치는 중국 오페라단에 들어갔다.성룡의 아기자기한 코믹 액션은 이 어린시절 곡예단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성룡은 곡예단에서 교육을 마친후 최초로 영화계에 입문, 이소룡의 '정무문'에 스턴트맨으로 참여하게 된다.

성룡이 유명해지고 난후, 숨겨 두었던(?) 그의 초창기 작품들이 성룡을 대대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며 재개봉 되는 사태들이 벌어지기도 했다.이때의 성룡은 이소룡식 심각한 무협물에서 자신의 코믹 재능을 발휘하기 이전이기 때문에 성룡의 팬들로서는 악인,조역으로서 심각한 분위기의 성룡 연기를 볼수 있다.

성룡의 코믹 스타일 영화들이 한국을 비롯,아시아 권에서 대히트 하면서 영화에 출연한 다른 배우들도 함께 스타대열에 오르기 시작한다.원표,홍금보등, 성룡보다 훨씬 선배격인 배우들이 성룡영화로 인해 하나둘 세계적 스타반열에 오르기 시작, 독자적인 주연망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홍콩 영화계는 한국 영화계를 제치고 아시아 선두주자로 나서기 시작한다..

헐리우드 진출, 첫 실패..

 

 


※성룡의 첫 헐리우드 진출작,베틀 크리크..성룡식 코믹을 배제한 액션물로 현지 흥행에서 대 참패를 했다.
헐리우드에서 요구했던 브루스 리 스타일의 재현은 성룡에게 실패를 안겨준셈이다.

 

흥행불패,나오는 즉시 매진되는 동양에서의 성룡의 인기에 헐리우드가 성룡과 접촉하기 시작한다.성룡을 주연으로 한 저예산 헐리우드물 '베틀 크리크' (1980) 는 성룡의 최초 헐리우드 진출 무비 였는데, 헐리우드는 성룡에게 성룡의 방식이 아닌 브루스 리의 방식을 요구 하게 된다.결국, 흥행에서 참패하게 되자 세계적인 탑스타들이 한꺼번에 나오는 버라이어티 코믹 대작 영화'캐논볼'(1981)에 성룡을 다시 합류시켜 재키찬의 코믹 스타일이 세계적으로 통할수 있는지를 다시 시험해 보게 된다.이때 동양에서의 포스터는 성룡을 전면에 내세웠으나 현지 미국 포스터에는 버트 레이놀즈,로저무어,파라 포셋등 당대 최고의 헐리웃 스타들에 밀려 포스터에는 보이지 않는다.헐리우드 대형 스타들 사이에서의 헐리우드에서 요구하는 브루스 리 스타일의 연기에 성룡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부분이 없다는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스타일로 헐리우드를 점령하다.

캐논볼에서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성룡은 자신이 직접 자신의 스타일로 헐리우드에 뒤지지 않는 대형 작품 '프로젝트 A', '폴리스 스토리' 등을 감독, 주연하며 커다란 흥행성공과 더불어 자신의 영화로 전세계인 들에게 부르스 리가 아닌 성룡표 영화는 재밌다 라는 인정을 받게 된다.

또한,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가는 세계적인 성공으로 성룡은 그후,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헐리우드에서 제작하기 시작한다.

홍콩 영화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국내 영화계에서 초라하게 유지되던 무협물은 사라지게 되었고 에로 멜로물이 한국영화의 유일한 버팀목일때, 홍콩 영화는 재밌다.라는 인식을 전세계에 심어주며 홍콩영화계가 한국영화계를 제치고 다른 차원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한것은 순전히 성룡의 힘이라 볼수 있다.중간에 강시등,다른 가지들이 많이 나왔지만 결국 어떤 장르던지 간에 '홍콩 = 코믹영화'라는 큰 틀을 만든것은 성룡이다.


홍콩 중국반환을 앞두고 탄생된 홍콩 느와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다는 역사적 사실앞에 홍콩 영화계는 곧 종말이 다가오는듯한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성룡이 출연한 영화는 개봉과 함께 흥행이 보장되는 카드였으며 홍콩영화의 발전과 더불어 한해에도 수백개씩 비슷한 홍콩 영화들이 봇물처럼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탕하고 끝내자는 공장 시스템이 홍콩영화계를 장악하였다. 영화계는 홍콩 마피아들과의 커넥션으로 배우들은 스스로 제목도 모르는 네다섯편의 영화에 동시 출연하였고 유명 배우일 경우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영화가 일년에 수십편 만들어 졌다..미래를 알수없는 암울함이 잘나가는 홍콩 영화계를 막장으로 몰았고 반환을 앞두고는 스타들의 엑소더스 소동이 한동안 이어지기도 했다.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은 성룡식 홍콩영화 일색인 홍콩 영화계에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한 명작이다.주윤발이라는 걸쭉한 스타를 선두로  한껏 성장한 홍콩 영화계는 성룡식의 영화에서 주류가 주윤발식 홍콩 느와르 장르로 대규모 옮겨가게 된다.이때부터 성룡식 코믹 액션은 '한물 갔다' 라는 평들이 나오게 된다..중국에 반환된 이후, 현재, 홍콩 영화인들은 중국 당국의 전폭적 지지하에 적벽대전''공자'등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블록버스터 역사물들을 만들고 있다...


대본을 읽지 못하는 성룡.

성룡은 영웅본색이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장르로 바뀐이후 홍콩 영화보다는 대형 자본이 투자되는 헐리우드 대작들을 직접 제작, 출연함으로써 세계적인 배우이자 감독임을 입증해 나가고 있는데 재밌는점은 젊은 시절부터 액션스타로서 한길만 달려온 성룡이 아직까지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라는 사실이다. 즉, 수많은 각본과 제작,연출 출연을 하면서도 그는 대본을 보지 못한다는것. 홍콩 영화일때 성룡 대부분의 NG가 액션이었다면 헐리우드에서의 NG는 거의가 영어 대사로 인해 생긴다.그는 영화 '턱시도'의 엔딩 크래딧에서 자신이 마치 영어를 잘하는것처럼 보인다며 웃는다.

연기파 배우로서의 변신을 시도하는 성룡

 



이제 성룡도 나이가 꽤 됐다.조금 있으면 환갑을 눈앞에 두고 있다.새로운 성룡 영화 한편 보기가 예전 전성기때 처럼 쉽지가 않다.젊을때의 액션을 바래서도 안되겠지만 전성기때의 곡예단 액션을 버리고 .대병소장 ,신주쿠 스토리 등을 통해 성룡은 연기파 배우로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된다.관객들은 기존의 성룡 이미지를 탈피한 이런 작품들에서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지만 나이가 찬 성룡은 젊을때의 액션을 버리고 새로운 연기를 계속 시도할것으로 보인다.그리고 가장 성공한 중국 영화인으로서 재산 수천억을 사회에 기부하는등, 사회적인 모범을 보이면서 여러방면에서 다각적으로 중국 영화계에 공헌하고 있다.

근래에 나온 신작'성룡을 찾아서'' 대병소장''스파이 더 넥스트 도어'..과거 성룡의 모습을 기대하긴 힘들다.성룡은 중년이 보여줄수 있는 새로운 연기에 대한 시도를 계속 고심하고 있는듯하다.'신주쿠 스토리''대병소장'등 에서 연기파 배우로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데 한국의 팬들에게는 그것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것 같다.
 
새롭게 나오는 영화들에서  헬기에 매달리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성룡의 '몽키'액션을 더이상은 볼수 없지만 성룡이 어떤 모습이건간에 영화에 계속 나와준다는 사실 만으로도 성룡의 역사를 기억하는 올드 팬들은 반가울 뿐이다.한국이 조금 앞서가던 시절에서 성룡이라는 한 배우가 등장해 그가 이룩해낸 장엄한 홍콩영화 역사를 기억해 보라..지금의 거대한 홍콩 중국영화의 기둥을 그가 세운것임을 알수있다.

※ 이 포스팅이 이쁘게 편집돼 책으로 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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