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공옥진 충격의 스토리 예인은 통곡한다.


병신춤'하면 떠오르는 유일한 인물, 공옥진 여사님 입니다..2NE1 공민지의 고모할머니 이기도 합니다. 1931년 8월 14일 (전라남도 영광) 출생으로 전남 영광군 예술 연구소 소장 1996 공주 아시아 1인극제, 1인 창무극 심청전 1996 서울 두레 소극장, 1인 창무극 1993~1994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 순회 공연등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예인 무용꾼이었습니다.또한, 최근에는 공옥진이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일기 영화 "왕의 남자"에 등장하는 악공 `공길'의 후손일 가능성이 제기돼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광대로서 흰 무명 저고리와 버선 한 켤레, 쥘 부채 하나. 무대 위의 공옥진(78)은 서민들의 웃음과 눈물을 몸으로 표현해내며 흥행의 전설이 된 광대였습이다.

그러나 그녀는 2006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후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잊혀진 예인 공옥진,

공옥진이 혼자서 힘들게 투병생활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양한 매체에서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해야 했지만 KBS스페셜 제작진은 서울과 영광을 오가며 한 달간 그녀를 설득해 결국 공옥진 여사님의 근황을 영상에 담았다고 합니다.

 

"지쳤다. 아프지 말고 깨끗하게만 갔으면 좋겠다. 너무 아파…."

공옥진이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2006년 가을 집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후. 3차 신경통이라는 새로운 병도 생겨. 제작진이 만난 그녀는 걷기도 힘든데다 한쪽 손도 심하게 떨고 있었다고 합니다..

‘KBS 스페셜’ 제작진이 공옥진의 집을 찾았을때 공옥진여사는 4평 남짓한 공간에 혼자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두 번의 뇌졸중과 설상가상으로 덮친 교통사고 후유증, 바스라질 듯 깡마른 노인이 되어 거동조차 힘들어 보였다고 합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한 설움

그녀는 한 때 `대박공연'의 보증수표이자. 1인 창무극의 대가였지만 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를 뜻하는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1999년 전남도청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시 비밀투표 끝에 부결됐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전통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창작한 작품'이라는 것이 이유 입니다.국악전문가들은 '1인 창무극'은 전통에 기반해 재창조한 것으로 문화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영광군도 올해 5월 무형문화재 인정을 재차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1인 창무극'의 가치를 인정한다며 추후 논의를 해 보겠다고 말했다고는 합니다.그녀가 한창일때 부터 이제 다 죽어갈때까지 논의만 계속되고 있습니다.

결국,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해 배우는 사람이 없어 그녀가 사라지면 '1인 창무극'도 사라진다는 사실입니다.투병하기 전에는 자신의 사비를 들여 제자를 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두 떠나고 영광에는 단 한사람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공옥진 여사는

"사람들은 내가 무형문화재(보유자)인 줄 안다. 문화재의 '문' 자만 들어도 가슴이 무너진다"

고 털어놨다 합니다.

투병하기 전에는 사비를 들여 제자들을 키웠지만, 지금은 그들도 모두 흩어져 버렸습니다.전남 영광에 남아 있는 제자는 한현선씨 1명 이었지만 수제자 한씨도 대학에 진학하면서 전공을 '1인 창무극'에서 판소리로 바꿔야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예인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는 듯 무너져 내린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며 처음에는 세상을 향한 지독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합니다.서울과 전남 영광을 오가며 그녀의 마음을 두드린 지 한 달, 제작진이 준비해 간 CD의 화면을 보고 그녀가 눈물을 쏟아내며 얼어붙었던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털어놓는 충격적 사연은 11월1일 KBS 1TV ‘KBS 스페셜’에서 방송합니다.

인간 문화재 인줄 모두가 알고있었지만 사실은 비참한 생활속에서 사람들에게 잊혀진 공옥진 여사님의 갑작스런 소식에 가슴이 아프네요.한국의 예술문화계는 아직 갈길이 멀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