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떠오르는 '리얼' 로봇물(①)


애니메이션 2009. 11. 10. 02:43 Posted by 비회원



마징가 시리즈의 최신작인 '진마징가'의 '충격Z'편이 얼마전에 끝났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거 떡밥 무쟈게 던져주고 끝 아닌 끝을 내버렸죠. 마지막 회에서 불과 1분여 만에 모든 것을 뒤집어버리고(후속은 아마 그레이트가 되겠지만 그에 대한 정보는 입수를 못했음..).

이 포스팅의 이유라면.. 일단, 이번 마징가에서는 마징가의 원작자인 '나가이 고'가 애당초 마징가의 원안으로 삼았던 '에네르가 Z'가 등장하십니다. 그것도 포스 만빵으로.


어릴 적 즐겨봤던 슈퍼로봇대백과 류의 로봇 사전 중 마징가 편에 나오는 에네르가의 원안. 저렇게 탑승하는 것도 그렇지만 저토록 무방비 상태에서 전투를 시킬 생각을 한 나가이 고도 분명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이것이 진 마징가에 등장한 에네르가. 마징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내가 네 형이여" 이러는 듯 하지만 지금 한창 격전을 벌이려는 찰나다.



마징가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슈로대(슈퍼로봇대전)에서 단골로 등장하면서도 이도 저도 아닌 메카로 전락하다가 왕년의 원조 슈퍼 로봇으로서 갖고 있던 강대한 이미지마저 사라진 채 들러리로 전락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진마징가는 이도 저도 아니었던 마징카이저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마징카이저 OVA 중 '사투! 암흑대장군'의 광고샷. 출처는 마징카이저 공식 홈페이지.


일단 저에게는, 이 글 쓰는 본인이 마징가 세대인 데다 감독이 작정하고 한 듯한 연출이 참 좋았어요(일본 만화 빠냐고? 그런 거 따지시려면 다른 데 가시라... 근데 누가 보긴 하나;;).

암튼, 이 애니를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이 그거였습니다.

"슈퍼 로봇... 마징가... 다 좋은데 실생활에서는 어떨까"

다소 뜬금 없는 이 포스팅의 이유입니다.

사실 전장 수십미터 짜리 로봇이라면 그 자체로 민폐죠. 그냥 가만히 있으면 모르는데 보행도 모자라 무려 '전투'까지 벌입니다. 그것도 맨주먹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무기를 다 동원해서.

어이, 너 말이야 너.

마징가의 오프닝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듯 한데 브레스트 파이어를 쏘는데 그 넓은 광선 면적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는 건 적 로봇 뿐입니다. 분명 다른 부분에도 영향이 가는데 말이죠. 실제로는 브레스트 파이어나 루스트 허리케인 자체가 표적을 설정한 공격 무기일 수 없습니다. 암만 노리고 쏴도 맞는 범위가 무지 크죠.

각설하고, 에네르가 Z를 언급한 이유는 이 로봇이 마징가의 호버 파일더보다 더 황당한 탑승 방식(파일더는 양반. 이 로봇은 오토바이입니다.)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최신작에서도 그걸 그대로 그리는 동시에 마징가와 쌍벽을 이루는 메카로 나오죠. 오토바이에 타고 있음에도 파일더 안에서 조종하는 코우지만큼이나 여유롭다는건 아무리 봐도...

암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랬습니다. "'나가이 고'의 원작틱하게 만들긴 했네. 재미있군. 그런데 저건 좀 심한 것 아닌가"

그러면 이런 차원에서 설정이 그럴듯한 '리얼' 로봇은 뭐가 있었나 싶었던 게 이 포스팅의 요지입니다.

서론이 길었죠.

그럼 들어갑니다.

1. 지구방위기업 다이가드 (地球防衛企業 ダイㆍガ-ド 1999)
 


제목만 봐선 뭔가 있는 슈퍼로봇 같지만 실은 샐러리맨의 애환과, 기업이라는 조직의 굳은 관습을 그린 작품이다.

정체 불명의 괴수 헤테로다인이 어느날 일본을 습격한다. 일본은 이 헤테로다인에 맞서기 위해 거대 로봇 다이가드를 만들지만 막상 만들고 나니 그 괴수는 언제 왔냐는 듯 싶게 모습을 감춰버린다. 결국 다이가드는 제대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유지비만 잡아먹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게 된다.

저 골칫덩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머리를 싸매던 일본 국방부는 민간과 합작으로 '21세기 경비보장'이라는 업체를 만들고 거기에 이 다이가드를 떠넘긴다. 하지만 나라에서도 힘겨워하는 일인데 민간이라고 뭐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사내 전 부서가 다이가드 관리를 기피하던 중 홍보2과가 이 일을 맡게 되고 딱히 써먹을 데가 없게 된 다이가드는 회사 앞에서 광고탑 노릇이나 하며 시간을 죽이게 된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러가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헤테로다인의 출현 사실은 희미해져간다. 다이가드가 헤테로다인과의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실제로 움직이는 로봇이라는 사실과 함께.

그런데 11년 전처럼 어느날 느닷없이 헤테로다인이 해변에 모습을 나타낸다. 업무 차 그 장소에 있던 홍보2과 직원들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상부의 명령 없이 다이가드를 기동시켜 고전 끝에 헤테로다인을 물리친다.

이후 헤테로다인이 연이어 출몰하고 그에 따라 다이가드는 유일한 대항 수단으로 10여 년 만에 주목을 받는다.

이 작품 다이가드는 그 전까지 존재하던 슈퍼로봇의 공식을 확 깨버린 물건입니다. 키 25m, 중량 180t에 생김새는 가오가이거 처럼 용맹무쌍하게 생겼으나 실제는 무척 약합니다. 거기다 동력원은 전기인데 그마저도 오래 못 버팁니다. 그냥 움직이는 정도라면 3~4시간, 헤테로다인과 싸우기라도 하면 1시간은커녕 30분도 아슬아슬합니다. 거기다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돈을 더 줄여보려고 21세기 경비보장이 장갑을 가볍고 약한 재질로 바꾼 터라 헤테로다인과의 첫 전투에서 헤테로다인이 못 움직이도록 잡고만 있는 데도 팔이 우그러듭니다.

이러니 극강 필살기는 고사하고 현장으로 직접 움직여 출동하지도 못합니다. 세 조각으로 분해해서 대형 트레일러나 수송기에 실어 옮긴 뒤 크레인으로 현장 조립이죠(나중에는 그 세 부분이 각각 이동할 수 있게 개조되긴 합니다).

자신의 팔을 잡아뜯어 적에게 던지는 '다이가드 표 로켓 펀치'. 저게 로봇이 아니고 사람이라면 사방천지에 피가 튀는 '스플래터'신이 따로 없을 터.


로봇의 성능과 반비례하게 열혈이 넘치는 주인공 덕에 손에 잡히는 건 다 무기가 될 수 있다. 잠시 후 저 차가 어떻게 될지는 굳이 언급을...

이 작품을 '리얼'하다고 하는 이유는 위에 언급된 극히 사실적인 로봇의 존재도 있지만 주인공들과 다이가드 주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있습니다.

출동 한 번 할라 치면 거쳐야 하는 결재 라인들, 나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건만 기물 파손과 회사 손실에 책임을 지고 써야 하는 시말서, 다이가드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자 다시 소유권을 주장하는 국방부, 다이가드 때문에 할 일이 없어졌다고 시기하는 자위대 등이 그것이죠.

바로 "그래, 저거야" 하며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이런 현실적인 설정들이 여타의 로봇물과 차별을 이루는, 다이가드 만의 장점입니다. 그렇기에 서두에서 기술한 진마징가를 봤을 때 이 작품이 가장 먼저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전체 26화로 종결된 이 작품은 저조한 시청률에 고전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 속 저런 일련의 상황은 당시만 해도 로봇물의 주 시청자인 어린이들과 오타쿠들에게 먹힐 리 만무했죠. 오히려 직장 생활을 하는 어른들이 더 공감할 전개였으니까요. 장점이 오히려 독으로 돌아간 케이스랄까요.

여하튼 소위 말하는 리얼 로봇을 얘기할 때 이 작품을 빼놓을 수는 없을 듯 합니다. 흔히 건담, 특히 퍼스트 건담을 리얼 로봇이라고 하는데 전 거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로봇을 병기로 취급한 부분은 인정하지만 엄연히 그 작품 속 건담은 슈퍼 로봇의 냄새를 물씬 풍깁니다. 당장 샤아 아즈나블의 대사 중에도 이런 게 있죠. "젠장, 연방의 MS는 괴물인가."  '뉴타입'이라는 존재 또한 건담이 리얼 로봇물이 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죠.


간단히 쓰려고 했는데 좀 길어졌습니다. 이 외에도 몇 작품이 더 있는데 그건 다음 포스팅으로 넘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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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징가 2009.11.09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멋져요~!.마징가가 다시 나오고 있다니.몰랐네요.

    • 나이트세이버 2009.11.10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얼래? 댓글이 달렸네요;; 전혀 기대 안했건만; 고맙습니다. (__) 일단 진마징가는 방영이 종료됐습니다. 다음 시리즈는 아마도 진 그레이트 정도가 될 듯 싶어요.

  2. Favicon of https://neostar.net BlogIcon mullu 2009.11.09 17: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트세이버님의 해박한 정보를 댓글이 아닌 정식 포스팅으로 볼수있게돼서 정말 영광입니다.역시 기자분이시라 글솜씨나 아웃라인 잡는게 대단하시네요

    • 나이트세이버 2009.11.10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킁;; 해박이라뇨; 그나저나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스러웠는데 막상 해보니 또 재미는 있네요. 주 중에 두어 꼭지 정도 더 올릴 생각입니다. 어제 전화로는 형이라고 했는데 물루님이 부담스러워하시는 것 같아서 일단은 평소처럼 할게요. ^^;;

  3. Favicon of http://movietoon.net BlogIcon 하로기 2009.11.11 0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드디어 뭔가를 시작했군요. 제가 뭐 평가를 할만한 위인은 못되구요. 역시나 글솜씨가 딸리는 제 입장에선 후덜덜 합니다. ㅋ.ㅋ

    그리고 언급하신 지구방위기업 다이가드...이건 친구가 무진장 좋아했던 애니라 기억나네요. 저는 초반 좀 보고 어찌하다가 다 못봤는데 옆에서 계속 웃어대던게 생각납니다.

    "오...리얼해...만약 저렇다면 당연히 저렇겠지...오~~있을 법해...있을 법해..." 이런생각이 계속 들었던....ㅋㅋ

    이것이 진짜 리얼로봇의 세계죠. 왠지 땡기는군요. -_-/

  4. 나이트세이버 2009.11.11 02: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아;; 와주셨군요. 쌩유 베리감솨~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hhj2848 BlogIcon 하로기신부 2009.11.11 0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홈피가 깔끔하니 정리도 잘되있고 글도 잘정리해서 쓰셧네요

    ㅋ.ㅋ 종종 놀러오겠습니다 저동.

  6. Favicon of http://www.cyworld.com/channel-l BlogIcon Ch.L 2009.11.16 0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말을 잃게 만드는 깔끔한 글 때문에 한번 더 창피함을 느끼게 됩니다..^^

    나이트세이버 님의 포스팅을 보니... 그나마 리얼계라고 생각했던 로봇의 기준이 전혀 리얼하지 않았다고 느껴지네요..^^

    저의 기준은 그나마 합체할 때 시야를 가려주는 가오가이거나... 강력한 무기 없이 육탄전을 펼치는 철인 28호 정도로 생각했는데.. 역시나 리얼이라 하기엔 너무나 화려합니다..^^

    특히 로봇을 조작하는 인물들의 레벨부터가 다르네요..^^

    직장인들이라..^^ 확실히 세상을 유지하고 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일꾼들인가 봅니다..^^

    글 너무나 잘 보고 갑니다..^^
    너무나 깔끔하고 확실한 글이라는 느낌이 너무나 탐이 나네요..^^ 자주 와서 배워가야 겠습니다..^^

  7. 하미 2010.03.16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이가드를 다시보고 싶다는 생각에 검색하다가

    포스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ㅎㅎㅎ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gai2311 BlogIcon 노메드 2012.10.07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진마징가는 봤는데요(이것만 봤지만)
    제가알아봤을때는 마징가Z의 탄생배경과 미케네 신(이였나)들과 전투가된이유 헬박사가 광자력에 집착에대한이유(이게 제일 황당하긴했음)를 설명 해줬다고 할수있죠.(원작을않봐서리 확신은 않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