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아틀라스 (2012),서양에서 바라본 무미건조한 윤회사상,아쉬운 이유..


◆헐리웃/유럽/SF/판타지 2013.02.01 09:00 Posted by mullu


 

클라우드 아틀라스 (2012) Cloud Atlas

 

감독 앤디 워쇼스키, 라나 워쇼스키,톰 티크베어 

출연 톰 행크스 ,할 베리 ,짐 브로드벤트,휴고 위빙,휴 그랜트, 수잔 서랜든, 배두나..

 

'매트릭스'의 워쇼스키와 동양 윤회사상..

 

정말 화제도 많았고, 개봉 날짜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영화중 하나가 바로 이 클라우드 아틀라스 이다..매트릭스라는 거대한 족적을 남긴 워쇼스키 남매( 형제였다가 성전환 하는 바람에 남매로 변함) 가 제작하고 배두나가 여주인공을 맡은것도 흥미롭지만 헐리우드 탑스타들이 우루루 몰려 나와주시고..내용은 동양의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미래의 서울이 배경이라 하고..영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흥미를 안가질수가 있겠냐고..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탓일지..이 복잡한 윤회의 여섯개 카테고리를 나열해논 영화를 보고 난후는 조금은 실망을 가진것도 사실이다...그래서 한번 더봤다..

 

 

우선 30% 정도 아쉽다고 하는건, 본인이 한국 사람이어서 이다..중국사람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동양인들에게 윤회사상이란 그다지 신비로운 주제가 아니다..기독교 역사로 이뤄진 서양인들에게는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주제겠지만 이미 어릴때부터 더 정교하게 짜여진 윤회 픽션들을 수없이 접하면서 커온 동양인들에게 과연 이 별뜻없이 나열되는 윤회설이 감명 깊을런지는..

 

그저 같은 배우가 시대마다 너무나도 다르게 변신 하는 것에 더 눈길이 쏠렸다고 하는것이 맞겠다..킬러 앞에서 소리 꽥꽥 지르던 멕시칸 여자가 배두나 였다는 사실도 놀랐었지만 톰행크스의 변신은 그야말로 놀라울 지경..

 

 

윤회 하는 것에 이유가 없다.?

 

이 원작이 놓치고 있는 가장 큰 핵심은 왜 윤회를 해야 하는가 이다..동양에서는 그것을 '카르마' 로 인한것으로 원인이 있고 그에따른 결과를 나타낸다고 하는것이 핵심인데..클라우드 아틀라스 원작에선 이들이 윤회 하는 것에 개연성이 많이 부족하다..

 

악당은 예전에도 악당이고..다음생에도 악당이고..원인에 따른 결과..이런거 두번봤는데 역시 없다..그저 제비꼽기 식으로 다른시대 다른 인물로 태어나 마찬가지 성향으로 살던지 반대로 살던지..별 연관없이 살던지..뭔가 내가 캐치하지 못한 더 큰 연관성이 있었다면 핵심을 그 정도로 깊이 숨겨논 것도 문제라 할수 있겠다..어쨌든 관객들은 그 각각의 윤회하는 생이 어떻게 연결 고리를 가지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까..

 

 

중국의 인기배우 '주신' 배두나 친구역 조연..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 중에선 배두나가 가장 큰 역활을 맡고있다..더욱 통쾌한것은 배두나 옆에서 조연으로 나왔다 먼저 반항하고 죽어주는 여배우가 중국의 인기여배우 '주신'이란 사실이다..ㅋㅋㅋ 중화권의 대스타 주신이 배두나에게 밀렸다.만쉐이~!!!. 더더구나 주신은 영화 홍보에 이름조차 못올렸다..(왼쪽에서 세번째 서있는 조연이 바로 '화피'의 주신이다..) 주신이 이 영화에 출연하면서 자존심 상하진 않았을까..괜한 걱정도.

 

아무리 동양권 에선 난다긴다 하는 '주신'이지만 헐리우드 워쇼스키 앞에서는 그냥 이름없는 동양 배우일 뿐이다..주신을 조연으로 밀어버린 배두나 만만세다.

 

 

여섯개의 스토리를 찍고 잘라 붙이고..

 

이 각 시대마다 다른 여섯개의 스토리를 일정 간격으로 잘라 마구 섞어 놓은 편집..시대를 마구 넘나들면서 같은 배우가 다른 역을 연기한다..차라리 일직선으로 단편단편 여섯개의 에피소드를 씬시티 처럼 나열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더 볼품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여섯개 스토리를 잘게 잘게 잘라서 마구 흐트러 놓았기에 영화는 다소 어려워 보이지만 개개별 스토리는 전부 심플하다..그 여섯개가 하나로 돌아간다는 윤회사상을 표현하려 그랬겠지..

 

 

어쨌건 영화는 그렇게 여섯개의 스토리가 뒤죽박죽 섞여 있어 전체적으로 큰 긴장감을 형성 하지 못한채 예술영화 스타일 처럼 보이게 된다..관객들은 보고나서 이런 대 배우들과 대감독이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영화니까.엄청난 감동을 먹어야 되는거 아닌가...뭔가 대단한 내용인데 내가 놏친게 있는게 아닐까..괜한 죄책감에 사로 잡히기도 하고..스스로에게 자문도 해보고..하고싶은 말은 있는데 뭔가 자신 없어지게 만든다..(그게 바로 이름값이야..)

 

 

잘했어요..워쇼스키 남매님들..무릎팍 도사 에 출연해 한바탕 웃겨주시기 까지 하고..하나만 아셨으면 참 좋겠네요..동양인 관객들은 감독님들 보다 윤회사상에 관해선 더 도사들이예요..멋진 영상이지만 그 사상적 깊이에서 감독님들은 동양 관객들 따라 오려면 좀 멀었네요...윤회 사상이란것 자체가 서양인들 눈에는 신비롭고 놀랍겠지만 동양인들에겐 너무나 닳고 닳은 (어떤땐 진부하기 까지 한...) 소재중 하나 라는것도 감안 하셨으면 더 좋았을듯...어쨌든 깊은 감동까지는 좀 아쉽지만 아쉬운 동양의 철학적 사상이 깃든 서양인이 만든 멋진 영상의 멋진 영화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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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soulco.tistory.com BlogIcon 지성의 전당 2018.12.07 22: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윤회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