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야구 열풍이 거셉니다. 올해 국내 프로야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을 비롯해 치열한 순위 싸움 등으로 어느 해보다 인기가 좋았다죠.
보도를 보면 정규 시즌 532경기 동안 사상 최다 관중인 592만5천285명을 모았고 입장 수입도 338억원을 올렸다고 합니다. 포스트 시즌에서도 최다 관중(37만9천978명)을 넘었고 입장 수입도 처음으로 70억원을 돌파했다네요.
시즌은 이미 끝났지만 KIA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베테랑 이종범이 MBC TV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재미있는 '야구 뒷담화'를 전해줬고 KIA 선수들은 다음달 KBS 2TV '출발 드림팀2'에도 출연한다고 합니다.
이보다 앞서 지난달 초순께 신세대 선수들인 김현수(두산), 황재균(히어로즈), 김주찬(롯데), 류현진(한화) 등이 KBS 2TV '스타 골든벨'에 나와 연예인 못지 않은 끼를 발산했고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한 추신수(클리블랜드)도 화제였죠.
방송가의 야구 열풍 역시 KBS 2TV 예능프로그램 '천하무적 토요일' 중 '천하무적 야구단'이 불러오고 있을 정도로 야구 열기가 뜨겁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다 보니 떠오르는 만화가 있어 끄적거려 봅니다.
한국 프로야구는 1982년 3월 27일 서울운동장 야구장(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서울 연고의 MBC 청룡과 경북·대구 지역을 연고로 한 삼성 라이온즈의 개막전이 시작이었습니다. '전 재산 29만원'의 빛나리 아저씨가 그 개막전에서 시구를 했죠. 삼엄한 경호 속에.
제 기억이 맞다면 초창기 프로야구 구단은 6개였습니다. 상기한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 외에 OB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삼미 슈퍼스타즈, 해태 타이거즈였죠.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저희 세대에게도 어린이 야구단 가입이 큰 흥미거리 중 하나였을 정도로 야구의 인기는 높았습니다.
그런데 스포츠·비즈니스·도박·음식·일제강점기 등 다양한 소재로 만화를 그리던 허영만 화백이, 당시 국내 최초의 만화 잡지 '보물섬'에 1984년부터 '제7구단'이라는 작품을 연재합니다.
당시 일곱 번째 구단 창단이 관심사였다고는 하지만 국내 프로야구의 첫 신생팀인 실제 제7구단 '빙그레'가 참가한 해가 1986년이었던 걸 감안해도 이건 소재 자체가 거의 예언 수준이었습니다.
더 놀라운 건 당시는 대다수 사람들이 그런 개념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용병'이란 설정을 작품에 도입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신생 팀은 아무래도 선수 수급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좋은 성적을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실제 빙그레 역시 충청권 연고 선수, 다른 팀에서 선심 쓰듯 내준 선수들로 팀을 꾸렸기 때문에 첫 해 꼴찌는 당연한 수순이었죠(계속 꼴찌만 하다가 결국 사라진, 그래서 '삼미 슬퍼스타즈'라고 불린 '삼미 슈퍼스타즈'는 좀 다른 경우입니다).
작품 속 제7구단 '샥스'도 출발은 위풍당당했으나 결과는 바닥이었습니다. 덕분에 모(母)기업의 제품 매출 역시 적자의 연속이었죠. 참 사실적이지 않습니까?
꼴찌의 늪을 탈출하려던 샥스 팀이 선택한 길은 용병 도입이었습니다. 더구나 만화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그 용병은 훈련된 거대한 고릴라 '미스터 고'였죠. 허 화백 작품 속 영원한 주인공 이강토는 미스터 고의 사육사로 나옵니다. 여기서는 실질적으로 조연이라 봐야겠죠.
미스터 고의 플레이에 상대 팀 선수들은 기겁을 합니다. 이쪽 펜스에서 저쪽 펜스로 사방팔방 튀어다닐 정도의 위력적인 공을 타석에서 때려대는데 누구 하나 잡을 엄두를 내지 못하죠. 잘못하면 죽으니까. 주루 플레이에서도 미스터 고의 위압적인 외관과 힘은 빛을 발합니다. 덕분에 샥스는 꼴찌 팀에서 탈피해 1위를 달리게 됩니다.
이 작품이 미스터 고에게만 초첨을 맞췄다면 금방 질려버렸을겁니다. 하지만 미스터 고 외에도 하일성 해설 위원을 모델로 한 '하일송', 제대로 야구를 하지도 못하면서 인기 관리만 신경쓰는 '사인중'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매 편마다 시트콤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줬습니다.
하지만 샥스의 영향을 받은 다른 구단들이 암컷 고릴라로 방해 작전을 편다든가 자신들 구단의 명칭에 맞춰서 호크스 구단은 야구하는 매 '미스터 혹', 엘레판츠 구단은 역시 야구하는 코끼리 '미스터 엘리펀트'를 내보내는 등 점점 황당한 설정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재미가 덜해갔어요. 거대 고릴라를 뛰어넘는 뭔가가 필요했던 건 당연했지만 작품 마무리는 좀 힘들었던 느낌입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추억의 만화입니다.
어디 중고라도 팔고 있는데 없나 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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